유성우는 비처럼 쏟아지지 않았다. (by KISH)

2009. 11. 19. 16:43PIX_N_LIFE



사진: 김상훈 KISH [www.kishkim.com]  


사자자리 유성우 피크타임이 4시에서 6시 사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1시 30분부터 삼척-도계-태백 촬영 최적 로케이션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2시 30분경 태백을 경유하면서 도로에 설치된 온도계를 보니 영하 10도. 차 안의 온도계는 영하 6도를 가리키고 있는걸로 보아 내 차는 늘 4도 정도 차이가 나는구나.. (터보엔진이라 열이 높아서 그런가..)




역시나 유성우를 잘 관측하려면 불빛이 없는 산 속으로 들어가야 하므로, 찾다가 찾다가 결국은 태백의 어느 산 꼭대기를 찾아 올랐다.

도착하니 새벽 3시경.

차 온도계가 영하 12도를 가리키는걸 보니 실제 온도는 영하 16도 정도라는 계산..




물론 방한대비는 철저히 했다.
티셔츠를 두겹 껴입고, 자켓 하나 입고, 전문가들이 에베레스트 등정할 때 입는다는 800필짜리 오리털파카를 덧 입고, 팔레스타인에서 산 카피예로 얼굴과 목을 두르고, 바지 속에 내복도 입고, 양말도 두겹 신고, 해치 장갑을 낀 중무장으로 차 문 밖을 나섰다.


아..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구나.


차 문을 여는 순간 누가 잡아채서 당기고
담배를 피면 장작 땔 때 처럼 빨간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고
삼각대에 매달린 카메라 스트랩이 미친듯이 춤을 추고
깜깜한 산 속에서 누군가가 계속 울부짖는 듯 하게 환청이 들리고..
이것이 강원도 바람의 힘.


그렇게 껴 입었는데도 키쉬의 동작은 달나라에 착륙한 우주인처럼 뒤뚱거리고 휘청거린다.

옷을 많이 껴입어서가 아니라 온 몸이 떨려서 제어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괴로웠던건 손과 발이었다.

해치 사격용 장갑은 손가락의 감각을 살릴 수 있도록 엄청나게 얇다.

맨손보다야 낫겠지만, 방한력은 테이프 커팅 할 때 쓰는 흰장갑보다 못하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손가락에 물이 찬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아링아링 해지며 시렵다 못해 아파온다.


어쨌든, '유성우'를 관측한고 촬영한 건 처음인데 '流星雨'라는 단어처럼 비가 쏟아지듯 유성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어림잡아 평균 5분~10분에 하나 정도씩 떨어지다가 가끔씩 한 번에 두 세 개가 연달아 휙휙 지나가는 정도..
게다가 대부분 유성은 작고 빨라서 아주 희미한 라인만 만들어지고, 사진에 잘 잡히지도 않는다.
그래도 평소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양의 유성을 본건 확실하다.
몇 시간만에 소원을 수십개는 빌 수 있었을테니까..

그리고 이 날, "아주 큰" 유성 몇 개를 보았다. 전문용어로는 '화구'라고 한다는데, 키쉬가 여태까지 본 유성 중에 단연 가장 컸고 아주 인상적이었다.  * 화구(火球) 또는 불꽃별똥은 평범한 유성보다 훨씬 밝은 유성을 말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천구성(天狗星)이라고 불렀으며, 서양에서는 '파이어볼(fireball)'이라고 한다. 국제천문연맹(IAU)의 정의에 따르면, 화구는 지상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행성들보다 더 밝은 유성(별똥)을 말한다. 즉, 안시등급으로 -4등급보다 밝은 유성을 말한다.

까만 하늘에 갑자기 성냥으로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 처럼 큰 노란 불꽃이 가로질러가는 느낌이었고 순간적으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래 사진에서 찍힌 큰 유성이 '화구'로 추정된다.









극심한 추위와 졸음 운전에 몹시 피곤한 날이었지만 '화구' 목격은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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