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현장과 M40 방독면

2010. 1. 13. 06:30KISH_NEWS





경기도 구리 근처를 지나다가 우연히 화재현장을 발견. 검은 연기를 따라가보니 재활용공장에서의 화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험과 고생을 무릅쓰고 값진 일을 하고 있는 소방관들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의 소방관에 대한 대우나 인식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는 생각이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건데, 가능하다면 당장 올해부터라도 육군 인사이드나 국방부 포토밀처럼 소방관들의 일상을 찍어 시민들이 소방관들의 노고를 재인식할 수 있는 사진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미군장비를 파는 작은 가게를 보고, 뭐 재미 있는게 없나 해서 들러보았다.

이것 저것 구경하다보니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어찌나 친절한지, 설명 다 해주시고 '커피도 한 잔 드릴까?' 하시길래 죄송해서 뭐라도 하나 사야만 한다는 강박감.. (역시 불친절보다 친절이 무섭다.)

그러다가 발견한게 이 미군용 M40 방독면이다.

키쉬가 90년대 최루탄 난무하던 시위현장에서 촬영할 때 쓰던 방독면은 미군용 M17 방독면인데, 이건 안경을 쓰고 쓸 수 가 없다. 그래서 안경알을 방독면 바깥쪽에 스카치 테잎으로 붙여서 썼었는데, 요즘은 그 안경알이 시력에도 맞지 않고 스카치 테잎은 오래 되어서 끈적거려 방독면 시야가 영 안 좋았다. 요즘은 최루탄을 안 쓰니까 방독면을 쓸 필요가 없어서 방구석에 쳐박혀 있는데, 십 수 년 만에 방독면 가져올껄 하고 후회했던게 작년에 다녀온 팔레스타인 시위현장이었다. 세계적으로 지독하기로 소문 났다는 우리나라 최루탄을 십 수 년간 맡아본 경험이 있던터라 '옛날 생각 좀 나겠네.. 그래도 뭐 우리나라 90년대 만 하겠어?' 라고 자신 있게 나섰다가 최루탄 한방에 바로 눈물 콧물 다 쏟고 쪼그리고 앉아서 우느라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다. (왕년의 노장, 스타일 완전히 다 구기고.. -.-;) 방독면 안 가지고 온거 후회하면서 며칠 뒤 시위현장에서는 현지에서 급하게나마 산 물안경을 써 봤는데 습기가 차서 또 못 쓰고.. 다음에 팔레스타인 올 때는 방독면 필수라는 교훈을 얻고 돌아왔다.

그리고 방독면이 필요한 또 다른 현장은 화재현장이다.

화재현장 갈 때 마다 후회하는거, 방독면 가져올 껄..

연기 흠뻑 마시고 집에 돌아가면 아무리 씼어도 하루종일 콧구멍에서 탄내가 난다.

삼겹살이고 뭐고 도움 안된다. 처음부터 안 마셔야지..

아무튼, 이 미군용 M40 방독면은 M17 방독면에 비해서 안경을 쓴 채로 쓸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박스에 들은 새거.

동두천이나 동대문에서 중고로 사면 무척 저렴함을 알지만, 스캇이나 탐 일병의 침이 고스란히 굳어있을 방독면을 마우스 투 마우스 하는건 좀 그렇잖아.

그리고 친절한 아주머니에게 뭔가 보답해드리고 싶었어..




박스를 열면 우선 방독면 케리어가 보인다. M17 케이스와 별 차이가 없다.






그 안에 방독면 박스. 제조번호를 보니 제조는 92년, 검사는 95년?

3년간 어디에서 뭐 한거지?

그건 그렇고 만든지 18년 된거라니.. 허허.. 앤틱이다.




박스 오픈 할 때 칼같은걸로 뜯으면 1/4인치 이상 찌르지 말라고 써있는 섬세한 친절함.




스페어 안경알 (투명)




썬글라스처럼 틴팅되어 있는 안경알. (핵폭탄 터지면 눈 부실까봐? -.-a)




후드




매뉴얼은 1988년도 인쇄.




방독면 새거는 처음 뜯어봤는데 나름 소중하게 포장되어 있다.




취수구 (물 먹으려면 고무 호스 달린 수통도 사야되겠네. 방독면 쓰고 담배 필 수 있는 시스템도 있으면 좋을텐데..)





MSA, 92년 제조라는 각인




이것이 방독면의 핵심, C2 필터.




92년 제조. (필터가 10년 지났으면 아무리 기밀포장 되어 있어도 유효기간 지난거다. 그런데, 경험상 최루탄이나 화재 연기 정도는 필터 성능 떨어져도 큰 문제가 없다. 그래서 그냥 한 번 써볼까 한다.)





그런데, 약간 걱정되는게 있다. C2 필터 초기형은 발암성 물질이 들어 있어서 C2 개량형이 나왔다던데 이게 개량형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거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10290159

이 기사에 따르면 1994년부터 미군이 발암성 물질이 든 필터를 교체했다고 나오는데, 캐니스터에 표시된 제조일자를 보면 1992년이니까 이 기사가 정확하다면 이 필터는 발암성 물질이 든 필터가 되겠다. 그런데, 이 기사가 정확한지 의심스러워서 google로 미국 기사를 열심히 찾아봤는데 정확히 몇 년도 생산분부터 개량형인지는 찾지 못 했다. 그나마 찾은 구분법은 필터가 검은색이면 개량전, 국방색이면 개량형이란다. 아니, 개량을 했으면 C2A1이나 C3로 이름을 바꾸든 할 것이지, 이름은 그대로고 컬러만 바뀌었다니.. 이 캔을 오픈해봐야 알 수 있다는 것 아닌가.. -.-;

아.. 궁금해..

조만간 화재현장 가기 전에 열어보고 발암성 물질 든 필터면 어쩌지?

화재현장 연기가 몸에 더 안 좋을 것인가, 발암성 물질 든 필터가 몸에 더 안 좋을 것인가..




아무튼, 안경 낀채로 쓸 수 있는 방독면이 생겼다. (비닐은 새거라 붙어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