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넷 Design Net 2009년 6월호 / 김상훈 KISH 인터뷰 전문

2009. 6. 17. 02:01KISH_NEWS







사진을 통해 디자인을 확장하다



김상훈은 디자인과 사진의 뗄 수 없는 관계성을 인지하고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사진의 강점을 활용하는 디자이너다. 그는 디자인의 요소로서 사진이 독보적이고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에 대해 사진의 풍부한 질감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교적 계조가 적은 미드톤 중심의 흑백사진일지라도 사진에는 미세하고 불규칙한 입자가 가득 채워져 있다. 이는 여백을 상쇄할 수 있는 세련된 방법이며 디자인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김상훈은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디자인 작업을 한다. “디자인에 맞는 사진을 찾기보다 디자인 콘셉트와 레이아웃까지 고려한 사진을 직접 찍어서 사용하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는 그의 말대로다. 그는 사진을 찍고 편집하고 다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각의 확장을 경험하고 동시에 스토리텔링을 고려한다. 그런 면에서 디자이너 김상훈에게 있어 사진이란 단지 디자인의 한 요소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담당 김지혜 기자


 

 


김상훈 KISH

서울산업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 학사, 석사를 마치고 뉴욕 Pratt Institute에서 Communications Design 전공으로 이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Pratt Institute 재학 중에는 NFT와 MTV 본사에서 인턴디자이너로 일했고, 졸업 후에는 프랑스 뉴스 포토에이전시, Sipa Press의 뉴욕지부에서 포토그래퍼, 포토 에디터,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현재는 강원대학교 시각멀티미디어디자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육군과 국방부의 전속 포토그래퍼 및 멀티미디어 자문위원으로 사진 홍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_ 디자이너, 시각멀티미디어디자인학과 교수, 포토그래퍼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디자이너, 교수, 포토그래퍼 중 사람들이 어떤 호칭으로 부르기 원하는가?

 

나 자신도 장소와 일이 바뀔 때 마다 나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잠깐 생각하고 말하는 편이다. 어떤 호칭으로 불려지는 것 보다는 디자인계에서는 디자이너로, 학계에서는 교수로, 사진계에서는 포토그래퍼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다. 언뜻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 같지만, 내 활동들은 모두 연계성을 가진다.

 

_ 지금까지 했던 디자인 작업은 어떤 것들이 있나? 특히 최근 진행한 디자인 작업은 무엇인가? 

 

솔직히 말하면 요즘 들어 디자인보다 사진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 약 3년 전부터 육군이 육군 홍보 및 기록 사진프로젝트를 의뢰하고 멀티미디어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육군의 웹진과 블로그, ‘아미 인사이드’에 필요한 사진을 찍고 멀티미디어 디자인에 관한 자문을 해주고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국방부에서도 의뢰가 들어와서 이제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까지 찍느라 전국을 누비고 있다. 게다가 국내 일간지와 뉴욕에 본부를 둔 아틀라스 프레스 (Atlas Press) 라는 뉴스 포토에이전시의 프리랜스 포토그래퍼로도 일하고 있어서 수업이 없는 주말이나 방학 때는 국내외 뉴스 현장을 쫓아다니다 보니 최근 들어 한 디자인 작업은 학교의 인하우스 작업들과 사진 강연에 필요한 멀티미디어 작업, 그리고 나 자신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 전시용 인포메이티브 포스터가 대부분이다.


 

_ 디자인 작업 스타일은 어떤가?

 

디자인의 기본원리에 충실한 편이고 감성적이라기보다 이성적으로 작업하는 편이다. 디자인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뚜렷한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쓰여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진을 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직접 사진을 촬영하거나 틈틈이 촬영해 놓았던 이미지를 활용하고 그리드 시스템의 적용에 엄격한 편이다.


 

_ 시각멀티미디어디자인학과 교수님으로 강의하고 계신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르치는가?

 

학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멀티미디어디자인과 포토그래피, 2D그래픽스 과목과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치고 있다. 멀티미디어디자인 시간에는 웹 디자인과 사운드가 포함된 멀티미디어 모션그래픽을, 포토그래피 시간에는 촬영기법의 기초부터 중급과정까지, 2D그래픽스 시간에는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가르치며 타이포그래피 시간에는 타잎의 활용과 커닝, 그리드 시스템 등 편집디자인적 성격을 포함한 디자인과 멀티미디어가 가미된 모션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친다. 이외의 활동으로는 약 40여명으로 이루어진 학과 사진 학술동아리, p360를 지도하고 있다. 특히, p360은 수업시간으로 부족했던 포토그래피의 심화과정으로, 사진비평과 토론 위주의 활동, 그리고 단체 사진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_ 학생들에게 조언하고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절제. 학생들 작업을 보면 여백을 메우려고 불필요한 요소를 남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좋은 디자인은 엄선한 요소 하나 하나가 적소에 쓰이고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나온다. 무의미한 장식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목적에 충실한 디자인을 하라고 강조한다. 가끔, 디자인을 영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조연, 엑스트라, 로케이션과 미장센이 주인공과 스토리를 살리기 위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너무 튀어서는 안되듯이 어느 부분이 주인공이고 어느 부분이 조연이 될 것인지, 엑스트라는 어디에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 것이 주인공과 스토리에 도움이 될지 섬세하고 치밀하게 계획해야 하며 역할 분배를 잘 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빼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그리드 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 한다. 분야를 막론하고 디자인에서 편집적인 요소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레이아웃의 기본 개념인 그리드 시스템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탈그리드나 복잡한 응용 그리드 시스템도 그리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 한다. 아직 인생을 말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학생들보다 조금 더 있는 경험상, 사람은 자기 자신의 한계가 왔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부터 한참 더 갈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한계가 왔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한참 더 가야 비로소 한 단계 발전 할 수 있다. 어떤 분야의 일이든 한계를 느낀 시점에서 멈추면 결코 늘지 않는다. 무조건, 억지로라도 꾸준히 해 나아가다 보면 그 때서야 보이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작업은 언뜻 비슷해 보이게는 할 수 있어도 심도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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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인터뷰 기사에서 포토저널리스트라고 표현했다. 언제부터 저널리즘적인 사진을 찍게 됐나?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9년부터 시위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대학교 3학년이던 1993년부터는 군사전문지 객원기자로 일했었다. 대학교, 대학원에서 디자인 전공을 하면서도 계속 여러 매체의 객원기자로 일하다가 뉴욕에서 전문적인 뉴스 포토에이전시에서 풀타임 포토그래퍼로 일했는데 그 때 굵직한 뉴스 현장을 자주 커버하면서, 보다 심도 있는 포토저널리즘 세계를 경험한 것 같다.


 

_ 디자인작업과 사진작업에서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면? 또 차이점은 무엇인가?

 

시각적 의사소통이라는 점에서 사진과 디자인에는 공통점이 많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점이 그런데, 그 메시지를 표현하는 여러 방법 중에 주목성을 가질 수 있는 시각적 요소, 형에 의한 구도와 색에 의한 구도,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어떤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디자인에서도, 사진에서도, 일단 주제가 정해지면 주제는 물론이지만 주제를 받쳐줄 수 있는 부제와 디테일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다. 디자인은 내가 모든 요소를 제어할 수 있지만, 사진에서는, 특히 뉴스나 다큐멘터리 사진에서는 모든 요소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사진은 현장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아, 순간적인 판단이 결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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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일이 디자인 작업하는데 도움이 된다거나, 디자인작업을 해서 사진 찍을 때 도움이 되는 점은?

 

사진은 디자인과 떼어놓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다.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디자인의 요소로서 사진이 가지는 강점은 독보적이고 절대적인 면이 있다. 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는데, 百文不如一見이기도 하다. 좋은 사진 한 장은 문자와 언어와 인종과 시대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 특히, 정보 홍수화 시대에서 즉각적인 시각 유도에 사진을 능가하는 매체를 찾기란 쉽지 않다. 멀티미디어 시대에 사진의 입지가 동영상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여러 프레임으로 나뉘어진 동영상에 비해 정점에 달한 이미지만으로 승부하는 사진의 강한 인상은 동영상과는 다른 장점이다. 사진의 또 하나의 강점은 풍부한 질감이다. 비교적 계조가 적은 미드톤 중심의 흑백사진일지라도 사진에는 미세하고 불규칙한 입자가 가득 채워져 있다. 이는 여백을 상쇄할 수 있는 세련된 방법이며 디자인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좋은 재료를 잘 골라서 잘 다듬어야 좋은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좋은 사진을 고르고 사용하려면 좋은 사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사진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거기다가 직접 유기농법으로 정성스레 재료까지 재배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그 디자인에 맞는 사진을 찾기 보다 디자인 컨셉과 레이아웃까지 고려한 사진을 직접 찍어서 사용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편집하고 다듬는 일련의 과정은 시각의 확장인 동시에 스토리텔링이다. 그런 면에서 사진은 디자인에서 단지 한 요소로서의 의미를 뛰어넘기도 한다. 디자인을 공부하고 사진을 하다 보니 사진에도 무의식 중에 디자인적 습관이 나타난다. 특히, 구도에 있어서 사진이 디자인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다. 사진을 찍을 때 무의식 중에 프레임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점, 선, 면으로 인지하고 구성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디자인 전공에서 학습한 조형의 기본원리들이 머리에 박혀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디자인 전공에서 공부했던 빛을 해석하는 능력이나, 색에 대한 감각도 사진에 큰 도움이 된다.


 

_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한 해외 셀러브리티 사진이 많은데 어떻게 찍게 되었나? 몇 명을 예를 들어 설명해달라

 

Sipa Press 뉴욕지부에서 포토그래퍼로 일하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연예인 사진을 찍을 때는 렌즈에 눈을 맞추는 아이컨택이 중요한데, 그때는 내가 뉴욕 연예부 바닥에서는 유일한 동양인 포토그래퍼였기 때문에 오히려 연예인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재미있는 일이 많았지만 굳이 몇 명만 얘기하자면 친절했던 톰 크루즈와 불친절했던 고르바초프가 기억에 남는다. 몰려드는 취재진과 팬들에게 일일이 성의 있게 대해주는 톰 크루즈는 우리나라에서도 친절한 톰 아저씨로 유명해졌지만, 미국에서도 친절하기로 유명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레드카펫에서 톰을 불렀는데, 너무 코앞까지 와서 나만을 위해 포즈를 취해줘서 오히려 당황해 노출을 잘 못 맞췄던 기억이 난다. 연예인들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에 연예인들을 찍을 때는 별 감흥이 없는 편인데, 공산 통치사를 종식시킨 구소련 전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코 앞에서 봤을 때는 살짝 떨렸다. 강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 들어가 쉬고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다가가 “싸인 한 장 해주실래요?” 했다가 거절 당한게 아직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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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러 곳을 다녀오셨는데, 디자인 관련해서 먼저 생각하면서 보고 다니시는지, 아니면 전쟁 등 뉴스 관련 일이 더 눈에 들어오고 찾아가게 되는지?

 

디자인은 창작의 성격이 있고, 사진도 재해석과 창작의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기록의 성격이 강하다. 전쟁이나 큰 뉴스는 역사이고, 그 때가 아니면 다시 기록할 수 없는데 이제 적지 않은 내 나이를 고려하면 전쟁터 같은 특수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전성기는 몇 년 남지 않은데다가 방학 때만 기록한다 해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전쟁은 몇 번 기록하지 못한다. 그래서 방학 때는 전쟁터 촬영에 우선순위를 두는 편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요즘엔 인터넷이나 기타 매체의 운송수단이 많이 발달해서 세계 곳곳의 최신 디자인을 굳이 방문하지 않고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전쟁터는 직접 경험해보는 것 과 경험해보지 않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시각을 확장하는 것은 디자인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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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해외여행 혹은 해외촬영 에피소드를 소개해달라

 

2006년 레바논-이스라엘 전쟁 때 이스라엘의 공격이 심해져서 레바논의 남부 해안도시, Tyre에 며칠간 고립된 적이 있다. 음식과 물이 떨어져 가고 있었는데, 종군기자들을 상대로 문을 열고 장사를 하던 레스토랑을 발견하고 창가에 앉았다. 다른 종군기자들은 근처에 폭탄이 떨어지면 창문의 유리가 깨져 들어와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창가에 앉지 않아서, 혼자 창가에 앉았다. 원래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라 창 밖으로 보이는 지중해 해변과 여름 햇살은 일품이었지만 전쟁 통이라 상가가 모두 문을 닫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피난을 간 터라 유령도시처럼 길은 텅 비어 있었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에서 이스라엘 군함이 이쪽으로 함포를 쏘고 있고, 창 밖에 보이는 해변 곳곳에서 오르는 검은 포연만 아니라면, 마치 나만을 위한 휴양지 같은 기분이었다. 초현실적이던 그 기억을 잊을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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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준비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진과 디자인의 관계에 대한 논문을 쓸 계획이 있고, 사진관련 집필 의뢰 들어온걸 아직도 못 써서 원고 마감의 압박을 받고 있고, 여름방학에는 해외로 사진촬영을 한 번 다녀올 계획인데 아직 어디인지는 정하지 않았다. 뉴스는 예고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무슨 일이 터지면 바로 짐 싸서 떠나는 편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진만 찍는게 아니라 동영상과 사운드 같은 멀티미디어로도 기록을 해볼까 한다. 해외촬영은 내 디자인의 재료를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